[역경의 열매] 이광희 (16) 헐벗은 톤즈 살릴 망고나무 심기를 시작하다
은퇴 생각할 무렵 떠난 아프리카 봉사… 고통에 허덕이던 톤즈와 운명적 만남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34921&code=23111513&cp=nv
눈 씻고 봐야 먹을 것이라곤 풀뿌리도 없었다. 고기는커녕 계란도 없었다. 힘들게 구한 계란 한 알, 껍데기를 ‘탁’하고 깼다. 그릇 위로 주르륵 힘없이 쏟아지는 흰자, 허전했다. 노른자가 없었다. 아프리카 동북부 남수단 와랍주 톤즈는 그런 곳이었다. 닭조차 뜨거운 날씨에 시달리고 제대로 영양도 섭취하지 못해 노른자 없는 달걀을 낳는 땅.
그런 톤즈를 2009년 3월 운명처럼 만났다. 60세가 넘어 은퇴하면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무렵이었으니 운명처럼 만났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평소 친분이 있던 탤런트 김혜자 선생님이 월드비전 봉사를 가신다기에 호기심에 따라간 곳이 톤즈였다. 남수단은 30년 넘게 내전을 치르면서 기근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가 하필이면 한창 건기였다. 성경에 나오는 광야가 이럴까. 뙤약볕에 바싹 마른 땅과 들판에는 먹을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천막을 방문했더니 아버지는 전쟁, 엄마는 에이즈로 잃은 남매 4명이 있었다. 아이들은 쌀 한 줌으로 건기인 2개월을 버텨야 했다.
강물을 마시고 콜레라로 800여명이 죽었다는 톤즈 강에서 우연히 한 소년을 만났다. 강가에 앉아 쉬고 있는데 바닥이 보일 듯 말라버린 강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주운 소년이 흡족한 표정으로 내 앞을 지나갔다. 장난으로 “그 물고기 나 줄래”라고 했더니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배시시 웃으며 불쑥 생선을 내밀었다. 그 순박함에 나도 모르게 꼬마를 와락 끌어안았다.
척박한 그 땅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생을 섬겼던 해남등대원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만약 이 땅의 아이들을 봤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니 내가 해야 할 일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건기에도 먹을 수 있는 것부터 찾았지만 막막했다. 어느 날 망고가 눈에 띄었다. 망고는 열량과 영양이 풍부한 데다 심으면 7년 뒤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해 100년 동안 해마다 한 번씩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톤즈 사람들에게 망고나무를 갖는 것은 가게 하나를 갖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망고나무조차 드물었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망고나무 몇 그루 덕분에 아이 셋을 키웠다는 한 과부의 이야기가 내게 용기를 줬다.
“심는 사람이나 물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고린도전서 3장 7절 말씀이 떠올랐다. 황량한 톤즈 땅에서 망고나무가 뿅뿅 솟아나는 게 보이는 듯했다. 당장 수중에 있는 돈을 털어 100그루의 묘목을 심어줬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예전과 다른 나였다. 귀국 다음 날 적은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처럼 울음이 터져 나왔고 그치질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라고.
이상하게도 톤즈 생각이 자꾸 났다. 그곳에서 봤던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무엇 때문일까. 다시 가고 싶고 그들과 함께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을 꽉 메웠다. ‘심장이 뛰는 일’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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