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아프리카 동북부 남수단 톤즈의 한센인 마을에 대형 화물을 컨테이너에 실어 보냈다. 한센인 복합센터의 교회 옆에 세울 종탑의 철골 구조물이었다. 컨테이너에는 삽과 호미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전까지 삽과 호미는 톤즈에 필요 없는 물건이었을 것 같다. 건기 때 태양은 모기조차 살지 못할 정도로 뜨거웠다. 우기엔 땅이 움푹 팰 정도로 강한 비가 쏟아졌다. 주민들은 채소나 과일을 키우는 건 생각도 하지 못 했다. 삽과 호미는 그 땅에 농업을 알려주기 위한 시작이었다.
그동안 진행해 온 프로젝트 중 가장 어려운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어려운 일들을 무수히 겪었고 식은땀 흘리며 잠 못 이룬 날들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무슨 일인들 어려울까.
나를 믿고 후원해주신 분들을 향한 마음의 빚을 저버려선 안 되겠기에, 힘들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은 말이 있었다.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포기한 톤즈 땅에 작물이 자라는 것을 허락해 주실 것만 같았다. 그런 믿음에 신념을 더해 준 건 8년 전 경험이었다.
2012년의 일이었다. 망고나무 열매를 먹으려면 7년을 기다려야 하는 톤즈 주민들에게 또 다른 농작물을 선물하고 싶었다. 나눔이란 게 그랬다. 기회를 알려주는 것, 척박한 톤즈에 사는 그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과 한국의 농업 전문가들을 찾아가 톤즈에서 농작물을 키울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너무 더운 지역이라 작물 재배는 불가능하다’는 답만 들었다. 억울했다. 포기하기엔 광활한 대지와 태양, 비가 아까웠고 배고픈 사람이 너무 많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하늘이 알아서 키워주는 ‘뜰에 핀 백합’ 같은 과일과 채소를 찾았다. 물기가 많아 목마름을 달래줄 수박, 오이, 피망의 씨를 구해 톤즈의 희망고 직원에게 보냈다.
희망고 빌리지 한편에 뿌린 씨앗은 그해 9월 우기 때 폭우에 떠내려간 듯 보였다. 그런데 2개월 뒤 예상치 못한 광경이 톤즈 땅에 펼쳐졌다. 씨앗에서 싹이 나더니 열매가 맺혔다. 단물이 흐르는 수박은 일곱 덩이나 열렸고 길쭉한 오이도 줄기에 달렸다. 이메일로 사진을 받은 나는 감격에 겨워 며칠 밤잠을 설쳤다. 사진 속 땅은 마치 나에게 “왜 이제야 씨앗을 뿌렸냐”고 말을 거는 듯했다.
“오이가 열렸네. 그 덥고 메마른 땅에서 오이 한 입만 먹어도 살 일이지. 아프리카를 살린 거야.”
톤즈의 척박한 환경을 같이 봤던 김혜자 선생님도 내 손을 어루만지며 감격했다. 와랍 주지사도 이메일로 “세계에서 가장 굶주린 주민들에게 엄청난 소식을 줬다. 수백만 번 기쁘고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2015년 남수단 현지 언론인 주바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지인들이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더 창의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돼 스스로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삽과 호미는 바로 그런 날을 앞당겨 줄 존재였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35612&code=23111513&cp=nv
[역경의 열매] 이광희 (20) 삽과 호미가 선물한 ‘달콤한 수박과 오이’
작물재배 불가능한 땅에 과일·채소 심어 스스로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35612&code=23111513&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