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보기 클릭] 남수단에 학교 세운 이광희 디자이너…”전쟁보육원 세웠던 부모님 뜻 따랐죠”
‘채시라, 김희애, 황신혜, 원미경…’
이름 석 자를 대면 누구나 아는 당대 최고의 스타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이광희 패션디자이너’의 의상을 입고 활동했습니다. 이 디자이너는 업계에선 최고의 패션디자이너로 꼽힙니다. 역대 영부인 5명이 이 디자이너의 옷을 입었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는 패션 뿐만 아니라 해외 봉사활동을 헌신적으로 해왔습니다. 그동안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공익 지원활동을 해온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탤런트 김혜자 씨와 동행…최빈국 아프리카 남수단 지원 활동 시작
이 디자이너는 성공을 하면 할수록 ‘넉넉한 사람들을 위해 옷만 만드는 것이 내게 맞는 일인가’라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아와 한센인들을 보살펴 온 부모님의 삶도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13년 전 전혀 연고가 없는 세계 최극빈국 남수단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올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국가별 1인당 GDP 순위에 따르면 186개국 가운데 남수단은 185번째입니다.
오랜 내전으로 마을마다 전쟁에 참여했던 시민이 많아 평범한 시민들이 총을 갖고 거리를 활보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이런 남수단 톤즈에 2009년 오랜 친분을 쌓은 탤런트 김혜자 씨가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봉사 활동을 가게 됐습니다. 또 이 디자이너도 김혜자씨를 따라 남수단에 가게 됐습니다.
당시 남수단의 기후는 건기였는데 땡볕에 모든 것이 바싹 말라 있었고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잡초 뿌리도 없었습니다.
이 디자이너는 한국전쟁 직후 황폐한 마을에서 전쟁 보육원을 운영하던 부모님이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초라한 초가지붕 집을 보육원으로 운영하게 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 디자이너는 “부모님이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되물으며 남수단을 위한 지원을 결심했습니다.
■남수단 건기에 유일한 식량은 ‘망고’…’생명의 나무 심기’ 운동
이 디자이너는 음식 거리를 구하기 위해 남수단의 톤즈 시장에 갔습니다. 거리에 천을 깔아놓고 물건들을 올려놓았는데, 플라스틱 신발과 익지 않는 망고 열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톤즈에서 건기에도 유일하게 열리는 건 망고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수중에 돈을 털어 한 묘목에 20달러 하는 망고나무 묘목 100그루를 심었습니다.
이 디자이너는 외교통상부 산하 비영리단체인 희망의 망고나무, 줄여서 ‘희망고’를 세웠습니다.
톤즈를 다시 찾은 2009년 11월 한 가구당 망고 묘목을 3그루씩 주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전달된 묘목은 모두 4만 그루에 이릅니다. 관련 비용은 자선 패션쇼와 바자회 수익금으로 마련했습니다. 고객과 지인들도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망고나무만으로는 톤즈의 배고픔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첫 열매가 열리기까지 6년이 걸리기 때문에 그때까지 다른 먹을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나무가 성장한 뒤에도 열매는 3~4월에 열리기 때문에 일 년 중 다른 기간에는 음식 거리가 필요합니다.
■”농업 불가” 진단에도 채소 등 씨앗 심어 결국 성공
이 디자이너는 해결 방안으로 톤즈에서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톤즈로 데려온 국내외 농업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땅이 황폐해져 거름이 필요한데 거름을 만들 거리가 없고, 농기구도 씨앗도 없다는 겁니다.
또 우기에는 교통이 끊겨 남수단의 수도 주바에서 아무것도 가져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디자이너는 우기에 땅에 잡초가 나는 걸 보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종묘상회에서 수박과 오이, 피망, 시금치 등 종류별로 씨앗을 사와 톤즈 땅에 뿌렸습니다.
이후 현지에서 “동물들이 씨앗을 다 먹었다” “폭우에 떠내려갔다”는 실망스러운 소식만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3달 뒤 시원한 수박과 촉촉한 오이, 향긋한 피망이 열렸다는 기적 같은 연락이 왔습니다. 척박한 톤즈 땅에서 농업이 가능하다는 게 입증된 개벽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 디자이너는 향후 500가구가 가가호호 마당에서 농사를 짓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남수단에서도 외딴섬 ‘한센인 마을’서 자급자족 지원
앞서 이 디자이너가 비영리단체 희망고를 설립한 취지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찾아 도움을 줄 수 없는 곳을 찾아가는 겁니다. 그 정신에 가장 부합되는 곳으로 톤즈의 관자마을을 지목했습니다. 관자 마을은 한센인들의 마을로 100여 가구 600여명이 살고 있습니다. 톤즈 군수도 방문을 말릴 정도로 격리된 곳입니다.
이 디자이너는 2015년 1월 관자마을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주민들은 가족 단위로 여기저기 흩어져 움막과 토굴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가족 생계는 한센인 부부의 건강한 자녀들이 중심가에 나가 동냥해서 가져오는 돈으로 꾸립니다.
이 디자이너는 한센인들에게 옥수숫가루를 지원하고 건물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조만간 이곳엔 초등학교가 지어집니다. 건축가 조병수 씨가 무상으로 설계를 도왔습니다. 한센인 부부의 자녀들은 건강한데, 이들이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해야 가족의 생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회에서 활동이 어려운 한센인들은 자급자족을 위한 농업 교육이 예정돼 있습니다. 이 디자이너는 “복합센터가 생긴 뒤 한센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며 흐뭇해 했습니다.
이 디자이너는 “원망이 많던 관자마을 주민들의 표정이 요즘 밝아져 보람을 느낀다”면서 “톤즈 주민과 한센인들이 자립하는 걸 보게 되는 날 남수단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박지윤 / 모바일제작부 기자 | 해당 기자의 기사 구독신청 구독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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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윤 기자입니다.